여권만료 기간이 다가와서 새 여권을 받기 위해 얼마전 가까운 구청에 다녀왔다.

가까운 동작구청은 노량진 한복판에 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노량진이란 곳에 처음 가보았다.

 

쌀쌀해진 날씨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많은 젊은이들로 붐볐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어서 그런지 길거리 모퉁이엔 삼삼오오 구름 공장을 만드는 인파들로 붐볐고,

거대한 검정 패딩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총총 거리며 바쁘게 오가는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수능이나 공시 등 다양한 목표를 위해 이 곳에서 젊음을 쏟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본연의 목표를 이루고 이곳에서 나가게 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올해 8.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 수가 약 24만명이란다.

(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613/101491141/2)

그리고 구글로 검색해 보면 공무원 시험의 합격률은 한자리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어림잡아도 그러면 24만명 중 90%인 약 21.6만명은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들이 힘들게 공부한 시간들은 그들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 보탬이 될 것일까?

합격자들이야 원하는 목표를 이룬 것이니 그들의 소중한 시간에 의미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불합격자들은 어떨까?

과연 그들이 시험 준비를 경험함으로써 그들의 인생에 어떠한 보탬이 되었을까?

그들이 공부한 영어나, 국어나, 한국사 등은 나중에 빛을 발하는 시점이 오게 될까?

아니면 N년동안 한 일에 매진했던 경험이나 고생했던 경험이 그들의 마음가짐을 이롭게 해줄까?

사회라는 큰 그림 안에서 그들이 학원가에서 공부한 시간들은 '사교육 시장의 활성화' 이외에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남기게 될까?

 

한 때 광풍을 불어왔던 비트코인. (떡락한 이후 지금은 다시 고점을 되찾은 듯하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채굴하기 위해서 강력한 연산이 필요하고,

엄청난 양의 전기가 GPU라던지 채굴 전용 기계를 위해 소모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식으로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전력 소모에 대해 강하게 비판을 하기도 한다.

 

내가 궁금하면서 동시에 우려하는 점은

많은 고시 혹은 공시생들의 맨파워가 저런 식의 의미없는 시간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1년에 300일, 하루에 4시간 정도만 공부했다 쳐도

1년에 21.6만명 x 300일 x 4시간 = 2.6억 man hours가 소모되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저 소중한 시간을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데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시대의 흐름에 의해 많은 이들이 바늘 구멍을 뚫어내는 길을 택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만 젊은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좀 더 가치있는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합의를 거친 사회적인 차원의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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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과 핸드폰  (0) 2020.11.17

다른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혼자 식사를 할 때면 무언가를 보는 편이다.

그것이 유튜브일 때도 있고, 넷플릭스의 드라마일 때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피드를 휙휙 스크롤 하면서.

어느샌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재미있는 것을 보는 것이 뇌 속에 굉장한 보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나를 보며 얼마 전 아내가 말했다.

"오빠는 항상 혼자 그렇게 뭘 보며 밥을 먹어와서 미각이 죽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다음부터는 오롯이 먹는데 집중해 봐"

나를 로봇처럼 바라보는 아내의 일관된 의견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미각이 꽤나 없는 편이다.

맛있는 것과 더 맛있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편이고 다양한 맛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취향을 기르고 싶었던 커피나 와인은 맨날 제자리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번 시도해 보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밥만 먹기!"

 

식탁 위에 식사를 펼쳐 놓고 독대를 시작한다.

물론 왼쪽에는 핸드폰이 있지만 보지 않는다.

한숟갈 한숟갈 밥을 입안으로 떠 넣는다.

기대했던 것 만큼 미각의 세계는 더 펼쳐지지 않는다.

 

처음 밥숟갈을 들었을 때에는 '뭘 시청 안하고 먹는게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생각했으나

5숟갈채 뜨지 않을 무렵부터는 마치 중독자 마냥 '다음부터 밥만 먹지 뭐'라는 생각이 드는 걸 깨달았다.

내 뇌는 계속 '뭔가를 보고 있어야 지금 이 순간이 꽉 채워지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라는 기분이 들게끔 나를 강요했다.

결국 나는 중독자였다.

 

인간의 뇌는 원래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 심심함을 여러가지 자극으로 채워넣었을 때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극 위주의 쉽게 얻어지는 도파민은 오랜 기간 성과를 위해 심심함을 참아내는 방식의 보상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화면을 보지 말고 식사를 해보는 걸 어떨까?

뇌를 심심하게 놔두자.

생산적인 일이 하고 싶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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