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혼자 식사를 할 때면 무언가를 보는 편이다.

그것이 유튜브일 때도 있고, 넷플릭스의 드라마일 때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피드를 휙휙 스크롤 하면서.

어느샌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재미있는 것을 보는 것이 뇌 속에 굉장한 보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나를 보며 얼마 전 아내가 말했다.

"오빠는 항상 혼자 그렇게 뭘 보며 밥을 먹어와서 미각이 죽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다음부터는 오롯이 먹는데 집중해 봐"

나를 로봇처럼 바라보는 아내의 일관된 의견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미각이 꽤나 없는 편이다.

맛있는 것과 더 맛있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편이고 다양한 맛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취향을 기르고 싶었던 커피나 와인은 맨날 제자리이다.

 

그래서 오늘은 한번 시도해 보았다.

"아무것도 안하고 밥만 먹기!"

 

식탁 위에 식사를 펼쳐 놓고 독대를 시작한다.

물론 왼쪽에는 핸드폰이 있지만 보지 않는다.

한숟갈 한숟갈 밥을 입안으로 떠 넣는다.

기대했던 것 만큼 미각의 세계는 더 펼쳐지지 않는다.

 

처음 밥숟갈을 들었을 때에는 '뭘 시청 안하고 먹는게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생각했으나

5숟갈채 뜨지 않을 무렵부터는 마치 중독자 마냥 '다음부터 밥만 먹지 뭐'라는 생각이 드는 걸 깨달았다.

내 뇌는 계속 '뭔가를 보고 있어야 지금 이 순간이 꽉 채워지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라는 기분이 들게끔 나를 강요했다.

결국 나는 중독자였다.

 

인간의 뇌는 원래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 심심함을 여러가지 자극으로 채워넣었을 때 보상으로 도파민을 분비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극 위주의 쉽게 얻어지는 도파민은 오랜 기간 성과를 위해 심심함을 참아내는 방식의 보상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화면을 보지 말고 식사를 해보는 걸 어떨까?

뇌를 심심하게 놔두자.

생산적인 일이 하고 싶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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